목차
- AI가 그리는 무병장수의 청사진
- 오래 사는 것의 무게 — 연금과 의료비, 그리고 세대 갈등
- 수명이 늘어난다고 삶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 이제 일해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은퇴를 준비할 시기를 가늠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화 자체를 멈출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이어야 할 텐데, 오히려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이미 나이가 든 상태에서 노화가 멈춘다면, 나는 늙은 채로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더 오래 사는 것이 정말 더 잘 사는 것과 같은 말일까. AI와 유전자 기술이 인간 수명 120세를 현실적인 목표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1. AI가 그리는 무병장수의 청사진
구글의 자회사 Calico(칼리코)는 2013년 설립 이후 줄곧 노화 자체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다루는 연구를 이어왔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조작 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보고, 이를 늦추거나 되돌릴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대에는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로 여겨지던 120세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AI는 이 흐름의 핵심 도구로 떠올랐다. 혈액·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실제 나이와 다른 생물학적 나이를 계산하는 에피제네틱 시계(epigenetic clock)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마다 노화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해 대사 지표를 추정하거나, 여러 건강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노화 관련 질환을 조기에 경고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다만 이 기술이 이미 검증된 해법이라고 말하기는 이르다. Calico는 2014년부터 제약사 애브비(AbbVie)와 11년간 손잡고 노화 관련 신약을 개발해 왔지만, 2025년 11월 두 회사는 협력을 종료했다. 그동안 투입된 금액은 1조 7천억 원이 넘지만 아직 정식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없고, 루게릭병(ALS) 치료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도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노화를 멈추는 기술은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섰을 뿐, 아직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2. 오래 사는 것의 무게 — 연금과 의료비, 그리고 세대 갈등
수명이 늘어나면 그만큼 부양해야 할 기간도 길어진다. 한국은 2026년 1월, 2007년 이후 18년 만에 국민연금법을 개정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연금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이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개혁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 개편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 시점은 2064년으로 늦춰졌지만,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을 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의료비 부담도 함께 커진다.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 관리, 정기 검진, 각종 처방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여기에 수명이 몇십 년 더 늘어난다면, 개인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의료비 총량도 그만큼 불어난다. AI 기반 맞춤 처방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비용을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갈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검진과 처방을 꾸준히 받을 여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건강 격차는, 수명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나 자신의 걱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노화가 멈춘다면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일해야 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년이라는 개념도, 은퇴 이후의 삶이라는 계획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세대 간 갈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젊은 세대의 불안만 주목하지만, 각 세대마다 그 시절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에게는 은퇴 이후라는 개념 자체가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 상황이 닥친 셈이고, 청년 세대는 늘어난 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새로 짊어지게 됐다.
3. 수명이 늘어난다고 삶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수명 연장과 건강 수명 연장이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노화를 멈추는 기술이 실현되더라도, 그것이 몸을 다시 젊게 되돌리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상태 그대로 시간만 멈추는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후자라면 더 오래 사는 것이 곧 더 오래 아프거나 더 오래 노쇠한 상태로 머무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 수명이 함께 늘어나지 않는 한, 수명 연장은 축복이 아니라 연장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더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더 잘 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야 한다. 정년을 어떻게 재설계할지, 연금과 의료 시스템을 몇 세까지 기준으로 설계할지, 늘어난 시간을 노동으로 채울지 여가로 채울지는 결국 우리가 합의해야 할 문제다. AI와 유전자 기술은 가능성을 열어줄 뿐, 그 가능성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기술이 수명이라는 숫자를 늘려줄 수는 있어도, 그 늘어난 시간에 의미를 채우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게다가 이런 기술의 혜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값비싼 맞춤 처방과 첨단 검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이미 건강 격차가 존재한다. 노화 제어 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그 접근성이 소득 수준에 따라 갈린다면 수명 격차는 곧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으로 굳어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이 논의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 결국 누가 얼마나 오래,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이어진다.
결론: 늘어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서론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늙은 채로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그리고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일하며 보내야 한다면, 나는 그 미래를 온전히 반길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인간 수명 120세라는 목표는 기술의 진보만으로 완성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금 제도를 다시 설계하고, 세대 간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하고, 늘어난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사회 전체가 함께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더 오래 사는 시대는 이미 다가오고 있지만, 더 잘 사는 시대가 될지는 아직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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