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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본질은 처음부터 '보는 것'이었다 — 참여 스포츠, AI 리그

by ezadok 2026. 6. 23.

목차

  1. 검투사에서 드론까지 — 스포츠는 원래 관람 문화였다
  2. 근대가 만든 '참여 스포츠'의 시대 — 이것이 오히려 예외였다
  3. AI 리그의 등장 —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가는 인간

스포츠의 본질은 처음부터 '보는 것'이었다

 

나는 스포츠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하는 것도, 억지로 챙겨 보는 것도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AI 드론이 인간 챔피언을 이겼다는 뉴스를 보다가, 이상하게 뭔가 걸리는 생각이 생겼다.

"스포츠의 본질은 인간의 도전 아닐까?" 이게 상식처럼 느껴지는데 — 정말 그럴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포츠는 처음부터 '보는 것'이었다. 인간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는 오히려 나중에 생긴, 역사적으로는 꽤 짧은 현상일 수 있다.


1. 검투사에서 드론까지 — 스포츠는 원래 관람 문화였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을 떠올려보자. 수용 인원 5만~8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다. 거기서 검투사들이 싸웠다. 그들은 대중의 오락을 위해 경기에 나섰고, 관중은 그 장면에 열광했다. 검투사의 대부분은 노예나 포로였다 — 자기 성장이나 기록 도전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된 올림픽은 신을 기리는 축제이자 도시국가 간의 위신 경쟁이었다. 실제로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극소수의 엘리트였고, 나머지 수만 명은 관중으로 참석했다. 마차 경주(Chariot Racing)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 말과 마부가 목숨을 걸고 달리는 동안 관중은 함성을 질렀다.

이 시대의 스포츠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피와 속도와 힘을 가진 누군가가 대신 싸우고, 나머지는 그것을 보며 열광하는 엔터테인먼트였다. 스포츠의 원형은 관람이었다.

그 구조는 지금의 AI 드론 레이싱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2026년 1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A2RL(Abu Dhabi Autonomous Racing League) 드론 챔피언십에서 AI 드론이 인간 챔피언을 이겼다. 경기장에는 인간 파일럿이 없었다 — 소프트웨어가 드론을 조종했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고대 로마에서 검투사를 보며 열광하던 것과 구조가 같다.


2. 근대가 만든 '참여 스포츠'의 시대 — 이것이 오히려 예외였다

스포츠가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된 건 의외로 최근의 일이다. 1896년,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키면서 내세운 정신은 유명하다.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The important thing in the Olympic Games is not winning but taking part)." 당시 기준으로 꽤 급진적인 발상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생활체육 개념이 빠르게 확산됐다. 주 5일 근무제, 여가 시간의 증가, 공공 스포츠 시설의 보급이 맞물리면서 '운동하는 대중'이 탄생했다. 마라톤을 직접 달리고, 동네 풋살에 뛰고,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건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고작 100~150년의 이야기다. 수천 년의 스포츠 역사에서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는 오히려 짧은 예외적 시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스포츠는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감각 자체가 근대 이후 형성된 비교적 새로운 관념일 수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프로 스포츠가 압도적으로 커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다시 관람 문화로 기울고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을 직접 뛰는 사람보다 TV와 스트리밍으로 보는 사람이 수억 배 많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관람으로의 회귀가 시작된 셈이다.


3. AI 리그의 등장 —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가는 인간

이제 AI가 경기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생각보다 빠르다.

방위 기업 Anduril은 2026년, 50만 달러(약 6억 8천만 원) 상금의 AI Grand Prix를 발표했다. 순수하게 자율 비행 소프트웨어끼리 경쟁하는 드론 레이싱이다. 참가자는 조종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인간은 알고리즘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경기를 한다. 관중은 그것을 본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육상, 축구, 복싱 — 인간의 스포츠 종목 그대로를 AI로 학습된 로봇들이 자율적으로 소화해 냈다. 원격 조종이 아니었다.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였다.

그리고 RoboCup이라는 조직은 2050년까지 FIFA 월드컵 우승팀을 이길 수 있는 완전 자율 로봇 팀을 만드는 것을 공식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이 목표를 세운 건 농담이 아니다 — 수십 년간 이어온 진지한 연구 목표다.

이 모든 흐름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점점 더 '관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AI 드론이 싸우는 것을 보고, 로봇이 뛰는 것을 보고, 소프트웨어가 경쟁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하는 것. 이건 스포츠의 타락이 아니라, 오히려 스포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다.

스포츠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욕구 — 대리 전투의 관람, 강한 존재에 대한 경이 — 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검투사를 보며 열광했던 고대인들과, AI 드론의 레이스를 보며 흥분하는 우리가,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결론: 스포츠는 언제나 '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의 역사는 거대한 순환이다. 수천 년 전, 인간은 타인의 경기를 보며 열광했다. 근대 100년 동안 잠깐 '참여하는 스포츠'의 시대를 살았다. 그리고 이제 AI와 로봇이 경기장에 서면서, 인간은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2050년에 로봇 팀이 FIFA 우승팀을 꺾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계를 수억 명이 볼 것이고, 적지 않은 수가 열광할 것이다. 그게 스포츠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검투사를 보며 환호했던 고대인들에게 그것이 스포츠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스포츠의 본질이 '인간의 도전'인지, '경쟁의 관람'인지 — 역사를 길게 보면 후자가 더 오래된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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