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신약 개발 혁명의 현실과 가능성, 방식, AI

by olnyone 2026. 7. 14.

목차

  1. 10년이 1년이 되기까지 — AlphaFold가 연 신약 개발의 새 문
  2. 분자 수백만 개를 시뮬레이션하는 방식 — 독성은 낮게, 효능은 높게
  3. 아무도 투자하지 않던 질병 — 희귀 질환 치료제와 AI

신약 개발 혁명

 

몇 년 전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을 마주했다. 나이와 국적, 처한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 시기 전 세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결국 신약과 백신이었다. 하지만 신약은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오랜 봉쇄 속에서 다들 버티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끝없이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은 결국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맞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약 개발이라는 과정이 얼마나 느리고, 그 느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지를 실감했다.
신약 개발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후보 물질 하나를 찾기 위해 연구자들이 수백만 개의 화합물을 일일이 실험하고 검증해야 했고, 그 과정에만 평균 10년 넘는 시간과 수조 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고 분자 조합을 시뮬레이션하면서, 10년 넘게 걸리던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가 1년 안팎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개발 기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그동안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희귀 질환 치료제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1. 10년이 1년이 되기까지 — AlphaFold가 연 신약 개발의 새 문

기존 신약 개발은 평균 10~15년, 많게는 17년이 걸리고 비용은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 원 안팎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도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물질이 최종 허가를 받을 확률은 평균 7.9퍼센트에 불과했다. 이 지지부진한 과정의 첫 단추가 바로 표적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어떤 입체 구조를 가졌는지 알아야, 그 구조의 어느 지점에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지를 설계할 수 있지 때문이다. 그런데 단백질 구조를 실험으로 밝히는 데는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흔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AI 알파폴드는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해 내며 이 병목을 뚫었다. 실험 구조가 아직 없는 표적 단백질에 대해서도 초기 가설을 세우고 가상 스크리닝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생긴 것이다.
이 변화는 이미 실제 임상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은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18개월 만에 발굴해 임상 2상까지 진입시켰고, 그 결과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리기도 했다. 통상 4~5년 걸리던 전 임상 후보물질 도출 기간을 3분의 1로 줄인 셈이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아이소모픽랩스는 알파폴드3를 활용해 설계한 항암 신약 후보물질의 인체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AI가 줄이는 시간은 대부분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 발굴 단계다. 후보물질이 정해진 뒤에도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는 임상 1~3상은 여전히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하고, 이 과정에는 수년이 걸린다. '암 치료제를 1년 만에 만든다'는 말은 아직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 한정된 이야기이지, 약이 1년 만에 병원에 도착한다는 뜻은 아니다.

2. 분자 수백만 개를 시뮬레이션하는 방식 — 독성은 낮게, 효능은 높게

단백질 구조를 알아낸 다음 단계는 그 구조에 맞는 화합물을 찾는 일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화합물을 하나씩 만들고 반응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었다. AI는 이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옮겼다. 표적 단백질의 결합 부위에 수백만 개의 분자 구조를 가상으로 대입해보고, 결합력이 높으면서도 독성을 일으킬 만한 구조적 특징은 피해 가는 조합을 골라낸다. 이런 가상 스크리닝(virtual screening) 방식 덕분에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서 소요 기간을 최대 8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많은 사람이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맞아야 했던 것도 결국 이 검증 과정에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실제로 투여하기 전에 독성과 부작용을 최대한 걸러내는 시뮬레이션 단계가 촘촘할수록, 서둘러 내놓은 약이 예상 밖의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은 줄어든다.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는 없다. AI가 걸러내는 것은 확률이 낮은 후보를 미리 솎아내는 일이지, 임상시험이라는 검증 자체를 없애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애초에 걸러지는 후보군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실패할 확률도 함께 줄어든다는 점은 분명한 진전이다.

3. 아무도 투자하지 않던 질병 — 희귀질환 치료제와 AI

전 세계적으로 희귀질환은 7,000종에서 1만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가운데 승인된 치료제가 존재하는 질환은 5~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 수가 적으면 신약을 개발해도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제약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10년 넘는 개발 기간과 수조 원의 비용을 감당하고도 시장이 작으면 수익을 내기 힘드니,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한' 흔한 질병 치료제 쪽으로 자원을 몰아넣게 된다. 그 결과 희귀 질환이나 난치병을 가진 환자들은 치료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AI가 바꾸려는 지점이 바로 이 경제성의 문턱이다. 후보물질 발굴에 드는 시간과 인력을 줄이면, 적은 환자 수 때문에 외면받던 질환도 개발 비용 대비 타산이 맞는 영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벨기에의 한 AI 기업은 사업 방향을 아예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지원으로 전환해 유럽연합의 지원 연구 프로젝트에 기술을 제공하고 있고, 구글 딥마인드 역시 희귀 질환 치료법 탐색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사례들이 아직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의학'을 완성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던 질병들이, 이제는 적어도 연구를 시작해 볼 수 있는 문턱 앞에 서게 됐다는 것은 분명한 변화다.


결론: 다음 팬데믹은 우리를 덜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우리는 신약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무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완벽하지 않은 선택을 해야 했던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는 신약 개발의 속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지를 몸으로 느꼈다. AI가 신약 개발의 첫 단계를 몇 년에서 몇 개월로 줄이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나에게 막연한 기술 뉴스가 아니라 구체적인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물론 후보물질을 빨리 찾는다고 해서 임상시험이라는 검증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 위기가 왔을 때 우리가 이전보다 덜 기다리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그 가능성의 문이 이전보다 조금 더 넓게 열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지켜볼 가치가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출처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