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AI 변호사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 AI 판사는 인간보다 더 공정할까?
- 하지만 법은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 AI 시대에도 마지막 판단은 인간이 해야 한다

20대부터 인테리어 일을 시작했다. 현장 일을 하다 보면 계약서도 작성해야 하고, 거래처와 의견 충돌이 생길 때도 있다. 다행히 큰 법적 분쟁을 겪은 적은 없지만, 주변을 보면 공사 대금 문제나 계약 분쟁으로 몇 년씩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런데 얼마 전, 법이 이렇게 일상과 가까운 것인지 온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이 불법적인 계엄을 선포한 사건. 그리고 이어진 탄핵 심판. 헌법재판소에서 단 7명의 판사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그 시간, TV 앞에서 손에 땀을 쥐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7명 중 한 명이라도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었다면? 피로나 외부 압력이 판단을 흐렸다면?
국가의 운명이 소수의 인간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그날처럼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질문이 떠올랐다.
"AI 판사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1. AI 변호사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과거에는 변호사가 수많은 판례집과 법률 서적을 직접 찾아야 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판례와 법률 문서를 몇 초 만에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로펌에서는 AI 법률 서비스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계약서 검토, 판례 검색, 법률 문서 초안 작성 같은 반복적인 업무를 AI는 매우 빠르게 처리한다. 인간 변호사가 며칠 동안 검토해야 할 자료를 AI는 몇 분 안에 정리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로톡(LawTalk)'이나 '헬프미' 같은 플랫폼이 법률 접근성을 낮추고 있고, AI 계약서 검토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비용 부담 때문에 변호사 상담을 망설였던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도 인테리어 현장에서 계약서를 다룰 때마다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했던 적이 있다. 법률 용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기엔 현장 일정이 너무 빡빡했으니까.
2. AI 판사는 인간보다 더 공정할까?
AI 판사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감정이 없는 존재가 오히려 더 공정하지 않을까?
사람은 피곤할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외부 압력에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AI는 감정도 없고 편견도 없으며 피로도 느끼지 않는다. 같은 사건이라면 언제나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탄핵 심판을 지켜보던 그 순간, 솔직히 이런 생각이 스쳤다. 7명의 인간 판사 대신 AI가 헌법과 판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더 명확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중국 항저우·베이징 인터넷 법원에서는 AI가 유사 판례를 추천하고 판결문 초안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다만 2022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AI가 판사의 판결을 대체할 수 없다"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보조 도구로만 활용하도록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위험한 전제를 담고 있다. 탄핵 심판은 단순히 법 조문의 해석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가치, 국민의 의지, 역사적 맥락, 앞으로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것은 데이터로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3. 하지만 법은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같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다. 가난, 질병, 가족 문제, 성장 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존재한다. 인간 판사는 이런 배경까지 함께 고려한다. 사람의 후회와 반성, 피해자의 고통, 사회적 분위기 같은 것들은 데이터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AI 알고리즘의 편향이다.
미국에서는 재범 가능성을 예측하는 AI 시스템 'COMPAS'가 흑인 피고인에게 더 높은 위험 점수를 부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ProPublica, 2016).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도 흑인 피고인은 백인 피고인보다 고위험 점수를 받을 확률이 77% 더 높았다. AI가 과거 데이터의 편견을 그대로 학습한 대표적인 사례다.
AI는 과거를 학습한다. 과거에 불공정이 있었다면, AI도 그 불공정을 학습한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한국의 탄핵 심판에 개입되었다면, 그 편향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4. AI 시대에도 마지막 판단은 인간이 해야 한다
요즘 AI 발전 속도를 보면 놀라울 때가 많다. 하지만 탄핵 심판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반대의 생각이 강해졌다.
그날 가장 두려웠던 것은 AI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수의 인간이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의 위험성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은 AI로 대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AI는 그 구조를 더 빠르고 불투명하게 만들 뿐이다.
AI가 수억 건의 판례를 분석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더 나아가 한 나라의 방향을 바꾸는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인간은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탄핵 심판을 지켜보던 그 시간,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취약함을 지켜내는 것이 결국 사람이라는 것도 느꼈다.
기술은 정의를 돕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의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AI가 판사를 대체하는 세상보다, AI가 인간 판사의 눈을 더 밝게 만들어 주는 세상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으니까.
출처
- ProPublica — Machine Bias (2016): COMPAS AI 편향 보고서 (propublica.org)
- 로톡(LawTalk) 공식 사이트 — lawtalks.kr
- 머니투데이 — 알고리즘이 죗값 계산, 중국 AI판사 판례 추천 (2026.03.10)
- 유럽연합 AI Act — 사법 분야 AI 고위험 분류 기준 (2024) (digital-strategy.ec.europa.eu)
- Thomson Reuters — Future of Professionals Report (2023)
- 헌법재판소 공식 사이트 — ccour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