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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시 쓰는 영화 산업 — 배우의 초상권, 디지털 부활, AI 대본

by olnyone 2026. 7. 22.

목차

  1. 2023년 할리우드 파업이 던진 경고 — AI와 배우의 초상권
  2. 디에이징과 디지털 부활, 스크린을 떠나지 않는 배우들
  3. AI 대본과 1인 제작 시대, 낮아지는 창작의 문턱

AI가 다시 쓰는 영화 산업

 

나는 한때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소설에 몇 년을 빠져 살았다. 캡슐에 들어가 오감을 공유하며 자신의 캐릭터가 곧 자기 자신처럼 느껴지는 세계관에 완전히 매료돼, 그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영화관에 앉아 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스크린 속 배우의 표정과 목소리, 몸짓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완전한 환상 — 그것이 영화라는 산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 환상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세상을 떠난 배우가 스크린에 다시 등장하고, 젊어진 얼굴로 신작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꿈을 만드는 산업이 이제 AI라는 또 다른 꿈의 도구를 손에 쥔 셈이다.


1. 2023년 할리우드 파업이 던진 경고 — AI와 배우의 초상권

2023년 5월부터 9월까지, 미국 작가조합(WGA)은 133일간 파업을 벌였다. 뒤이어 7월에는 배우·방송인 노동조합인 SAG-AFTRA까지 파업에 합류하면서 할리우드는 두 노조가 동시에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표면적인 쟁점은 스트리밍 시대의 재상영분배금(residual)이었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첨예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었다.
작가조합은 생성형 AI가 대본 초안을 쓰고 인간 작가가 그것을 다듬는 방식으로 창작 노동이 대체될 것을 우려했다. 배우조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작사가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스캔한 뒤 AI로 무한히 복제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 번 스캔된 초상권이 계약 조건에 따라 평생, 심지어 사후까지 활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결국 두 노조 모두 AI 사용에 인간의 동의와 별도의 보상을 명시하는 조항을 얻어내며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파업은 AI가 더 이상 먼 미래의 담론이 아니라, 지금 당장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현실이라는 점을 산업 전체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이 합의 이전까지 할리우드에는 AI 활용에 관한 명문화된 기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두 노조가 133일과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합의안은, 이후 다른 창작 산업이 AI 도입을 논의할 때 참고하는 하나의 선례로 남게 됐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낸 만큼만 규칙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파업은 가장 상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다.

2. 디에이징과 디지털 부활, 스크린을 떠나지 않는 배우들

실제로 파업 이후에도 스크린 위의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2024년 개봉한 한 SF 영화 속편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된 배우가 디지털 형태로 다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일부 관객과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디지털 강령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판타지 대작의 신작에서는 고인이 된 배우의 생전 목소리 녹음을 재구성해 새로운 대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쓰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한 독립영화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배우의 역할을 AI로 복원해 완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해당 배우는 원래 캐스팅되어 있었지만 건강 문제로 촬영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제작진은 그의 생전 이미지를 학습시켜 영화를 완성했다. 이 소식은 팬들 사이에서 "감동적"이라는 반응과 "고인의 뜻을 확인할 수 없다"는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실제로 한 유명 배우의 유가족은 본인 동의 없이 세상을 떠난 배우의 이미지가 AI 학습에 사용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의식한 듯,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배우 생전과 사후 모두 디지털 초상 사용에 본인 혹은 유족의 동의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이 법은 202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건, 배우라는 직업이 이제 단순히 연기력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굴과 목소리, 표정의 습관까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살아있는 동안은 물론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 소비될 수 있는 하나의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법과 제도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동의와 존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뒤늦게 따라붙고 있는 셈이다.

3. AI 대본과 1인 제작 시대, 낮아지는 창작의 문턱

창작의 영역에서도 변화가 빠르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은 인간이 먼저 전체 구조와 플롯을 설계하면 AI가 장면별 초안이나 대사 뼈대를 생성하고, 다시 인간 작가가 감정선과 대사의 결을 다듬는 순서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AI가 전체 장면을 통째로 써 내려가게 두면 개성 없는 대사가 나온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그만큼 AI는 아직 초안 생성의 보조 도구로 여겨지고, 최종 완성은 인간의 손끝에서 이뤄진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영상 제작 쪽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 크다. 런웨이(Runway), 소라(Sora), 베오(Veo) 같은 AI 영상 생성 도구들은 몇 초에서 길게는 1분 안팎의 고화질 영상을, 카메라 워크와 인물의 일관성까지 어느 정도 유지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 완전한 장편 영화 한 편을 이 도구들만으로 완성했다는 사례는 흔치 않지만, 소규모 팀이나 1인 제작자가 예전이라면 수십 명의 스태프와 거액의 예산이 필요했던 장면을 혼자 구현해 볼 수 있는 문턱은 확실히 낮아지고 있다. 자본과 인력이 없던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반대로 그 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위협의 문이 동시에 열리고 있는 셈이다.
카메라 팀, 조명 팀, 세트 디자이너처럼 전통적으로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공정의 일부가 소프트웨어 몇 줄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상상만 하던 영화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경력이 흔들리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창작의 민주화와 일자리의 축소는 지금 같은 화면 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결론: 새로운 산업 앞에서, 인간이라는 문제를 직시할 시간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그런데 AI는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산업혁명이 특정 업종의 노동 방식을 바꾸는 데 그쳤다면, AI는 창작자, 배우, 스태프, 플랫폼, 관객에 이르기까지 영화·드라마 산업에 관여하는 거의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건드린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이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는 없다.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혼란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알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다. 나는 한때 가상현실 소설 속 세상에 빠져 살며 스크린 너머의 완전한 환상을 꿈꿨지만, 지금은 그 환상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누군가의 일자리와 정체성을 건드리는 현실 앞에 서 있다. 편리함과 기술 발전이라는 거센 파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파도 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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