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수백만 년 걸릴 단백질 구조 분석을 단숨에 끝낸 알파폴드의 위력
- 심우주 데이터를 분석해 외계 행성을 찾는 AI
- 스스로 판단하며 움직이는 화성 탐사 로봇

어릴 적 곡성에서 밤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있습니다. 은하수가 강물처럼 하늘을 가로지르고, 유성이 1~2초 간격으로 쏟아지던 밤이었습니다. 너무나 압도적인 광경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하나같이 "그런 게 가능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외계인은 정말 존재할까?" "결국 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든 건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런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한 지금도 우주는 여전히 거대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데이터입니다. 현대 과학은 너무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은 매일 수십 테라바이트의 우주 정보를 수집하고, 생명과학 연구소는 방대한 규모의 유전자 데이터를 쏟아냅니다. 인간 연구자만으로는 이 정보를 모두 분석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가 새로운 과학자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1. 수백만 년 걸릴 단백질 구조 분석을 단숨에 끝낸 알파폴드의 위력
생명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단백질입니다. 단백질은 세포의 구조를 만들고, 효소로 작용하며, 신호를 전달하는 등 생명 활동 전반에 관여합니다. 그런데 단백질이 어떤 3차원 형태를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오랫동안 과학계의 난제였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인 X선 결정학이나 냉동전자현미경 기법으로는 단백질 하나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이른바 '단백질 접힘 문제(Protein Folding Problem)'는 5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생명과학의 핵심 숙제였습니다.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AI 시스템 알파폴드(AlphaFold)는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알파폴드는 방대한 생물학 데이터를 학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합니다. 2022년 7월에는 약 100만 종의 생물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단백질 2억여 개의 구조를 무료 공개 데이터베이스로 공개했고, 과학계는 이를 생명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돌파구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190개국 20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 과정이 빨라지고, 그동안 손쓰기 어려웠던 희귀 질환과 열대성 감염병 연구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그 공헌을 인정받아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와 연구 책임자 존 점퍼(John Jumper)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AI가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십 년 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패턴을 찾아내고 기초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 심우주 데이터를 분석해 외계 행성을 찾는 AI
우주 망원경은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옵니다. 그 속에는 수십억 개의 별과 수많은 행성 후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중에서 실제로 외계 행성일 가능성이 높은 신호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별빛이 미세하게 어두워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통과 현상(Transit)' 방식은 변화폭이 너무 작아 인간 연구자가 검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AI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2017년 NASA 연구팀은 신경망 기술을 케플러(Kepler) 우주망원경 데이터에 적용해, 기존에 확인되지 않았던 케플러-90 항성계의 8번째 행성을 새로 발견했습니다. 이 신경망은 테스트 데이터셋에서 실제 행성과 가짜 신호를 96% 정확도로 구분했습니다. 이후 NASA는 딥러닝 기반 AI 시스템 ExoMiner를 개발해 케플러 데이터를 재분석했고, 기존에 확인되지 않은 외계 행성 301개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 미션/기술 | AI 적용 방식 | 주요 성과 |
|---|---|---|
| 케플러 + 신경망 (2017) | 별빛 밝기 변화 패턴 학습 | 케플러-90 8번째 행성 발견, 96% 분류 정확도 |
| 케플러 + ExoMiner (2021) | 딥러닝 기반 신호 분류 | 외계 행성 301개 추가 확인 |
| 제임스 웹 + AI 분석 | 적외선 스펙트럼 분석 | 외계 행성 대기 성분 탐지 고도화 |
앞으로는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높은 행성인 이른바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에 위치한 행성을 탐색하는 데도 AI가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수집하는 적외선 스펙트럼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외계 행성 대기의 화학적 성분을 파악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어릴 적 그 밤하늘 아래에서 떠올렸던 "외계인은 정말 있을까?"라는 질문에, AI가 조금씩 과학적 답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3. 스스로 판단하며 움직이는 화성 탐사 로봇
지구와 화성 사이의 통신 지연은 짧으면 편도 3분, 길면 22분에 달합니다. 이 말은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명령을 내려 로봇을 조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명령을 보내고 응답을 받는 왕복 시간이 최장 44분에 달하니, 순발력이 요구되는 위기 상황에서 지구 관제실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현재 화성을 탐사 중인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는 이미 강력한 자율 주행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율 주행 시스템 AutoNav가 주변 지형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위험 요소를 피하며 최적 이동 경로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2024년 기준 퍼시비어런스의 이동 거리 중 약 90%가 이 자율 주행으로 이루어졌으며, 2023년 4월에는 하루에 331.74미터를 자율 주행하는 화성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25년 12월, 퍼시비어런스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지구에서 인간이 경유 지점을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성형 AI가 직접 경로를 설계하고 로버가 그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최초의 AI 계획 드라이브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단순한 자율 이동을 넘어, AI가 탐사 전략 자체를 결정하는 단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과학적 탐사 면에서도 AI의 역할은 커지고 있습니다. AEGIS(Autonomous Exploration for Gathering Increased Science) 시스템은 카메라로 주변 지형을 스캔해 과학적으로 가치 있는 암석이나 지형을 스스로 판별하고 분석 우선순위를 결정합니다. 지구의 과학자가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로버가 스스로 연구 대상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달과 화성, 그리고 더 먼 심우주를 향한 탐사에서 AI의 역할은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망원경이 눈을 확장했듯, AI는 지능을 확장한다
곡성의 밤하늘에서 품었던 세 가지 질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외계인은 정말 존재할까", "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든 건가". 그 질문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AI는 그 답을 향해 인류가 달려가는 속도를 극적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알파폴드는 50년의 난제를 풀고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ExoMiner는 인간이 놓쳤던 외계 행성 301개를 찾아냈습니다. 퍼시비어런스는 화성에서 스스로 길을 계획합니다. AI는 과학자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과학자가 더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망원경이 인간의 눈을 확장했듯,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과학 혁명은 연구실과 슈퍼컴퓨터, 그리고 AI가 함께 만들어갈 것입니다. 어쩌면 그 끝에서, 곡성의 밤하늘이 던진 그 오래된 질문들에 드디어 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출처
- Google DeepMind — AlphaFold reveals the structure of the protein universe (2022)
- Nobel Prize —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2024 (AlphaFold)
- AlphaFold Protein Structure Database — EMBL-EBI
- NASA — AI and NASA Data Used to Discover Eighth Planet Circling Distant Star (2017)
- NASA Science — New Deep Learning Method Adds 301 Planets to Kepler's Total Count (2021)
- Astrobiology.com — Perseverance Rover Completes First AI-Planned Drive on Mars (2026)
- IEEE Spectrum — Mars Rover Perseverance Sets Autonomous Driving Rec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