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예측은 빨라졌지만 행동은 왜 늦어지는가
- 경고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 재난 AI가 답해야 할 마지막 질문, '누가 남겨지는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숫자와 예측을 보면서도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실제로 일상을 멈추고 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이제 AI는 폭우와 산불, 폭염의 위험을 더 빨리 계산하고 경보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난 앞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예측 자체가 아니라 '지금 떠나야 한다'는 말을 믿고 움직이는 일일지 모른다. 기술이 아무리 빨라져도,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신뢰와 돌봄일 것이다.
지금도 재난 상황이 되면 문자나 방송으로 사람들에게 대피를 알린다. 하지만 그 경보를 받은 뒤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들어도 따르지 않는 사람,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 알지만 따르지 못하는 사람. 이 세 갈래는 예측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직접적인 사람의 안내와 실천일지 모른다.
1. 예측은 빨라졌지만 행동은 왜 늦어지는가
AI 재난 예측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국내에서는 2025년부터 AI 초단기 강수예측모델이 도입되면서 집중호우를 최대 6시간 전에 예측할 수 있게 됐고, 지진 관측 후 경보까지 걸리는 시간도 5
10초에서 3
5초로 줄었다. 산불의 경우 연기와 열원을 인식하는 AI 모델이 위성이나 카메라 이미지를 촬영한 뒤 2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경보를 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예측의 속도와 정확도만 놓고 보면, 재난 대응은 분명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런데 예측이 빨라졌다고 해서 사람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를 덮친 이튼·팰리세이즈 산불이 그 간극을 보여줬다. 서부 알타디나 지역 주민들은 새벽 3시 25분이 되어서야 전자 대피 경보를 받았고, 일부는 경보 대신 창밖에 번지는 불길을 보고서야 상황을 알아챘다. 같은 시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체 900만 명에게 잘못된 대피 경보가 일제히 발송되는 기술적 오류까지 겹쳤다. 최소 28명이 숨지고 18만 명 이상이 대피 대상이 된 이 사고 이후, 캘리포니아주는 카운티의 경보 시스템을 한시적으로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고, 독립 조사는 '낡은 정책과 통신상의 취약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무리 정교한 예측 모델이 있어도, 그 정보가 사람에게 제때 정확하게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 사고는 뼈아프게 보여줬다.
2. 경고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예측이 사람에게 제때 닿았다고 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경보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먼저 들어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연구는 이 현상을 단순한 '경보 피로'가 아니라 '제도 신뢰 피로'로 설명한다. 정부나 지자체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리면, 아무리 정확한 경보라도 소음처럼 흘려듣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밀링(milling)' 행동이라 부르는데, 경보를 받고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고 그 의미를 재차 확인하거나 주변에 되묻는 데 시간을 쓰는 경향을 말한다. 이웃이 짐을 챙겨 실제로 떠나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자신도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회적 확인 효과도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알지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부류는 신뢰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의 문제다. 흥미롭게도 연구자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문구도 찾아냈다. '이미 대부분의 이웃이 떠났다'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알려주는 메시지는, 혼자 먼저 움직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실제 대피율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세 유형 모두에게 필요한 해법은 결국 비슷한 지점으로 모인다. 정확한 예보를 던져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경보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고 실제로 짐을 챙기고 이동하는 과정을 함께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경보를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보낼수록, 그 경보를 사람의 행동으로 옮겨줄 누군가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3. 재난 AI가 답해야 할 마지막 질문, '누가 남겨지는가'
세 번째 유형, '알지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통계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의 사망률은 비장애인보다 2~4배 높다. 2025년 1월 이튼 산불로 숨진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77세였다.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거나, 경보를 듣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대피소 자체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로스앤젤레스 산불 당시에도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와 장애인들이 대피 과정에서 뒤처졌다는 증언이 이어졌고, 재난이 지나간 뒤에도 이들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복구 과정에서 사기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예측이 아무리 정확해져도, 그 정보를 실제로 몸을 움직여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없다면 예측은 숫자로 남을 뿐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나 역시 정보를 안다는 것과 실제로 행동을 바꾼다는 것 사이의 거리를 실감했다. 재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AI가 폭우와 산불과 폭염을 몇 시간, 몇 분 앞서 예측해 주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 예측을 듣고 따르지 않는 사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재난 대응 시스템이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빨리 예측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결국 남겨지는가'일 것이다.
결론: 예측이 끝나는 자리에서 돌봄이 시작된다
코로나19 시절, 숫자와 예측은 매일 쏟아졌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늘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재난도 마찬가지다. AI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위험을 계산해도, 경보를 믿지 않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예측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다르다. 예측이 끝나는 지점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나가는 돌봄이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
- CNN — A 'dangerously unacceptable breakdown' led to errant or delayed evacuation warnings in the LA County fires
- LA County — After-Action Review of Alert Notification Systems and Evacuation Policies for the Eaton and Palisades Fires
- TechCrunch — Every smartphone in LA accidentally received a wildfire evacuation alert
- NBC News —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disproportionately impacted by natural disasters, Census data shows
- PreventionWeb — As communities face more frequent hazard warnings, we need better systems to avoid 'emergency fatigue'
- Security Magazine — Why People are Milling in Emergencies
- YTN 사이언스 — AI 집중호우 예측, 재난문자 확대...재난 예방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