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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저작권 - 허락, 법원, 작품

by ezadok 2026. 6. 28.

목차

  1. 허락 없이 학습된 그림 — 무엇이 문제인가
  2. 법원과 입법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3. AI가 만든 작품,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AI와 저작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한 지 꽤 됐다. 공간을 보는 눈, 색과 빛의 배합에서 오는 감각 — 이것은 수년에 걸쳐 몸에 밴 것들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공개한 포트폴리오 사진들, 온라인에 올린 작업물들이 지금 이 순간 어딘가의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쓰이고 있진 않을까. 허락을 구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내 이름 대신 다른 누군가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이 질문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명의 창작자들이 같은 의문을 품은 채 법정에 서고 있다.


1. 허락 없이 학습된 그림 — 무엇이 문제인가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들은 인터넷에 공개된 수십억 장의 이미지를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왔다. 문제는 그 이미지 중 상당수가 저작권을 가진 창작자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화가, 음악가, 작가 —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의 작품이 AI 학습에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대 이미지 에이전시와 AI 이미지 생성 기업 간의 소송이다. 2023년 2월 해당 에이전시는 1,200만 장 이상의 사진과 메타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AI 모델을 학습시켰다는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별도로, 세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여러 AI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다 —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수십억 개의 이미지에 무단으로 자신들의 작품이 포함됐고, 그 결과 탄생한 AI가 바로 그 작가들의 일감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법적 침해를 넘어선다. AI는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학습해 그와 흡사한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10년을 쌓아 만든 독창적인 화풍이 AI 프롬프트 몇 줄로 모사된다면 — 그리고 그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활용된다면 — 이것이 단순한 '학습'인지, 아니면 무형의 도용인지를 두고 세계가 논쟁하고 있다.

2. 법원과 입법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까지 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2025년 11월, 영국 고등법원은 위에서 언급한 이미지 에이전시의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 주장 대부분을 기각했다. AI 학습을 위한 이미지 사용이 저작권법상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소송이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진행 중이며,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집단소송 또한 2024년 8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이 일부 청구의 계속 진행을 허가하면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법 면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유럽이다. EU AI Act는 2025년 8월부터 AI 기업에 훈련 데이터 출처 공개 의무를 부과했다. 2026년부터는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AI 학습 사용을 거부(opt-out)할 경우 AI 기업이 이를 반드시 존중해야 하며, 위반 시 최대 1천만 유로 또는 연간 매출액 2%의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 저작권청도 2025년 1월 새로운 지침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핵심은 간단하다 —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인간의 창의적 기여가 있어야만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프롬프트 한 줄로 AI가 뽑아낸 이미지는 현재로서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법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AI 기술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소송은 쌓여가고, 판결은 엇갈리며, 입법은 뒤를 쫓는다. 창작자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3. AI가 만든 작품,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철학적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AI를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는 데 AI를 쓴다. 이 사용성을 부정하기 어렵고, 사회는 점차 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나 역시 AI가 강력한 도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도구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쓰이느냐다.
그 흐름 속에서 저작권의 핵심 기준은 '인간의 참여도'가 됐다. 미국 저작권청의 지침대로라면, AI가 100% 생성한 결과물은 보호받지 못한다. 반면 인간이 방향을 잡고, 수정하고,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한 과정이 있다면 그 부분에 한해 저작권이 인정된다. 결국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미래로 갈수록 AI의 도구적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이 얼마나 개입했는가'라는 질문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품과 모조품의 논리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교한 모조품이라도 진품과 같은 가치를 갖지는 못한다. 100%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완벽해 보이더라도, 거기에는 창작자의 고민과 선택과 감정이 없다. 그것은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개인의 취미 산출물'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다.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것으로 남는다. 물론 먼 미래에 AI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감정에 한없이 가까워진다면 — 그때는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그 판단은 미래의 몫으로 남기더라도, 지금 이 순간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결론: 도구가 만들어도, 가치는 사람이 남긴다

인테리어 설계를 할 때 나는 수치 측정 도구를 쓴다. 그 도구가 공간의 치수를 재주지만, 그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내가 결정한다. AI도 그런 도구다 — 강력하고 빠르고, 때로는 나보다 더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저작권 논쟁이 결국 묻고 있는 것도 같다. 창작의 주인이 누구인가. 법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인간의 손길이 닿은 만큼만 보호받는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수백만 명의 창작자들이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 싸우는 이유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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