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AI 법률 서비스, 변호사 없이도 소송이 가능해진 이유
- 미국 법정에 넘쳐나는 AI발 가짜 판례
- 법의 민주화,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요즘 법률 업계 채용 시장을 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신입 법조인을 예전만큼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신입은 채용 후 실무에 적응하기까지 1~2년이 걸리고, 그 사이 들어가는 인건비와 교육 비용,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리스크까지 회사가 떠안아야 한다. 반면 AI는 적응 기간도, 보수를 둘러싼 리스크도 없다. 계약서 검토나 판례 정리처럼 정형화된 업무는 이미 AI가 신입 변호사의 자리를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의뢰인을 설득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사람 사이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까지 AI가 넘보는 건 아직이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의 문턱 자체는 분명히 낮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AI가 존재하지도 않는 판례를 진짜처럼 인용해 법원에 제출하는 사건이 빠르게 늘고 있고, 실제로 변호사가 자격정지를 당하거나 거액의 제재금을 물기도 한다. 법의 민주화는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오류가 숨어 있다.
1. AI 법률 서비스, 변호사 없이도 소송이 가능해진 이유
세계 법률 기술 시장은 2026년 약 141조 원 규모에서 시작해 2035년까지 연평균 27% 이상 성장하며 약 215조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 성장을 이끄는 것은 AI 기반 계약서 검토 도구다. 핵심 조항을 자동으로 요약하고, 회사별 맞춤 체크리스트로 준수 여부를 확인하며, 누락되거나 잘못된 조항과 독소 조항까지 짚어내는 작업을 한 시간 안에 끝낸다. 월 3만~5만 원대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예전 같으면 변호사 자문료로 수십만 원을 썼을 일을 훨씬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흐름은 법률 업계의 채용 구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신입 법조인은 실무에 적응하는 데 1~2년이 걸리고 그동안의 인건비·교육 비용, 성장하지 못할 리스크까지 회사가 떠안아야 하는 반면, AI는 그런 부담이 없다. 계약서 검토나 판례 정리처럼 정형화된 업무는 이미 상당 부분 AI로 넘어갔고, 의뢰인을 설득하거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인간적 판단이 필요한 업무만 사람의 몫으로 남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 홀로 소송'이 많은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해 전체 민사 사건 78만 6,085건 가운데 70만 5,567건, 약 90%가 양측 모두 변호사 없이 진행됐고, 소액 사건에서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평균 80% 정도가 나 홀로 소송이었다. 변호사 비용 부담이나 정보 부족으로 소송 자체를 포기했던 사람들이, AI를 통해 소장 작성, 답변서 작성, 판례 정리, 법률 상담 지원 같은 영역까지 도움을 받으면서 법적 구제를 받을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이런 흐름을 두고 시간과 비용 여력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법률 시스템에 접근할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사법 민주화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2. 미국 법정에 넘쳐나는 AI발 가짜 판례
하지만 같은 기술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사례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AI가 만든 허위 인용을 추적하는 한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6년 6월 9일 기준으로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내용을 지어낸 법원 사건이 1,598건에 달했다. 1년 전 약 200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증가다. 2026년 5월 22일부터 6월 9일 사이에만 140건이 새로 추가됐는데, 이는 하루 평균 8건꼴로, 같은 해 4월의 하루 5~6건보다 더 빨라진 속도다.
제재 수위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2023년 5,000달러 수준이었던 벌금은 2025년 한 건에서 5만 5,597달러까지 뛰었고(18개월 만에 11배), 현재까지 기록된 최고액은 약 10만 9,700달러다. 오리건주의 한 와이너리 소송에서는 두 변호사가 15건의 가짜 인용과 8건의 조작된 인용문을 세 차례 서면에 담아 제출했다가, 합쳐서 이 최고액에 이르는 제재를 받았다. 2026년 1분기에만 미국 법원이 AI 관련 서면에 부과한 벌금 총액이 14만 5,000달러를 넘었다.
결과는 돈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6년 2월 네브래스카주의 한 이혼 항소심에서는 변호사가 제출한 63개 인용 중 57개가 결함이 있었고 이 중 20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판례였다. 같은 해 4월 네브래스카 대법원은 이 변호사의 자격을 정지하고 징계 조사를 명령했다. 테네시주에서도 항소법원이 세 건의 병합 항소에서 스무 건 넘는 가짜·왜곡 인용을 발견해 담당 변호사 두 명을 제재했다.
3. 법의 민주화,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법률 AI를 둘러싼 신뢰 문제는 이미 규제 당국의 심판대에도 올랐다. 2015년 주차 위반 딱지에 대응하는 챗봇으로 시작한 한 서비스는 이후 '로봇 변호사'를 자처하며 사업을 넓혔지만, 정작 변호사를 채용하거나 법률 관련 기능의 품질과 정확성을 검증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5년 1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 회사에 19만 3,000달러의 배상 명령을 확정하고,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가입했던 이용자 전원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도록 했으며, 실제 변호사처럼 작동한다는 근거 없는 광고도 금지했다.
한국 사법부 역시 판결문을 쉽게 풀어 쓰거나 삽화를 활용하는 등 AI를 통한 접근성 확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복잡한 사건일수록 AI가 법적으로 의미 없는 문구를 수십 페이지씩 만들어내며 겉으로만 그럴듯한 소장을 완성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런 소장을 직접 작성한 당사자 대부분이 그 오류를 스스로 검증할 전문성이 없다는 데 있다.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진행했다면 최소한의 필터링을 거쳤을 내용이, AI를 통한 나 홀로 소송에서는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법정에 제출될 위험이 크다.
결국 법의 문턱을 낮춰준 바로 그 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법정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오류의 대가는 서비스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소송 결과에 인생이 걸린 당사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결론: 문턱은 낮아졌지만, 검증의 책임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신입 변호사의 자리를 AI가 대신하는 것처럼, 법률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계약서 검토는 한 시간 안에 끝나고, 나홀로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도 AI의 도움으로 소장을 쓸 수 있게 됐다. 이 변화는 분명 반갑다.
하지만 미국 법정에 쌓여가는 1,598건의 가짜 판례 사건은, 그 편리함 뒤에 검증되지 않은 오류가 그대로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AI 법률 서비스가 변호사 비용의 장벽을 낮추고 법적 구제의 기회를 넓혀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검증의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법의 민주화는 반가운 변화지만, 그 변화를 안전하게 누리려면 결국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어야 한다.
출처
- AI Hallucination Cases Database — Damien Charlotin
- AI IP Year in Review — AI Hallucinations in Court Filings and Orders — Sterne Kessler
- AI Hallucinations Strike Again — LawSites
- FTC Finalizes Order with DoNotPay That Prohibits Deceptive 'AI Lawyer' Claims — FTC
- '나 홀로 소송' 73%인 한국…AI가 법률 서비스 격차 줄일 수 있을까 — 메디헬스뉴스